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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김어준, “세월호 참사 희생자 故 임 군, 해경청장 의전 때문? 항공 수색 하지 않은 것”
[종합] 김어준, “세월호 참사 희생자 故 임 군, 해경청장 의전 때문? 항공 수색 하지 않은 것”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11.0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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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세월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세 번째 공식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 故 임 군을 태웠어야 할 응급 이송 헬기가 해경 간부들을 태웠다고 발표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지 5시간이 흐른 오후 5시 24분, 세월호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임 군이 발견됐다.

목포한국병원과 원격 의료 시스템을 통해 임 군의 산소포화도가 올라가면서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지만 응급 이송 헬기는 임 군을 태우지 않았다. 임 군은 해경 P정(경비정)을 옮겨 다니다가 오후 7시를 넘어서 사망자로 처리됐다. 병원은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거리였다.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40분까지 70분 동안 해경 헬기 두 대가 함정에 착륙했지만 김수현 서해해경청장과 김석균 해경청장을 각각 오후 5시 40분과 6시 35분쯤 태우고 떠나 버렸다.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은 지난 11월 1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임경빈 군의 발견 장소가 각각 다른 사체검안서가 나오면서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세월호에서 1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는 사체검안서와 세월호 근방에서 발견됐다는 사체검안서가 동시에 발견됐던 것이다. 사실상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항공 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6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희생됐던 학생들 중 누구도 부검하지 않았다. 유족들의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발견된 학생 사인이 익사가 아니라 저체온증이라면 어떻게 되는냐고 묻는 유족들이 있다”고 했다. 초기에 항공 수색이 이뤄졌다면 저체온증을 막을 수 있었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참사가) 4월이었기 때문에 바닷물이 제법 찼지만 한겨울은 아니었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동안 바다에 있어도 살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했다. 김어준 공장장은 임 군이 탔어야 할 응급 이송 헬기를 해경청장이 의전 등을 이유로 탄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MBC뉴스데스크가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한 채증 영상을 보면 임 군의 맥박이 잡히면서 소방헬기로 이송하라는 의료진의 지시가 나온다. 응급조치가 이뤄진 것은 임 군이 발견된 오후 5시 24분으로부터 35분이 지난 5시 59분쯤이었다. 대략 20여 분이 지나서 심폐소생술이 시작됐고 맥박이 잡혔다. 앞서 헬기를 타고 떠났던 김수현 서해해경청장과 김석균 해경청장 사이에 소방 헬기를 조타실에서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임 군을 경비정으로 옮기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응급조치를 했던 당사자들 사이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어준 공장장은 “해경청장의 의전 때문에 임 군이 탔어야 할 헬기를 뺏어서 탄 것처럼 언론 보도가 나오는데 의전 이전의 문제다. 의전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소방 헬기가 배에 내렸는지, (임 군을) 안 태우고 상공에서 그냥 돌아갔는지 채증 영상이 잘려서 알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임 군의 맥박이 안 잡혀서 헬기가 그냥 돌아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해경들이 아니라 의료진이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 또 사체 인계 통신에 임 군의 맥박이 잡힌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박병우 국장은 사체검안서가 2~3장씩 되는 학생들이 20여 명 정도가 더 있었다고 했다. 임경빈 군을 수습한 당사자는 세월호에서 15m 지점에서 찾았다고 특조위에 알렸고, 공식적인 기록은 100m였다고 했다. 박병우 국장은 “오후 3~4시에 9대의 헬기 대부분이 응급 지침을 받았으나 상공에서 충돌 위험이 있으니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5시간 동안 입체적인 수색이 안 된 것”이라고 했다.

임경빈 군의 부모님은 2015년 이미 검찰에 진정 사건을 넣었다. 오후 5시 24분에 발견됐는데 밤 10시쯤 관련 내용을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5시간 동안 전후 사정을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고, 자정이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특조위는 이런 전후 사정으로 관련 자료를 받았고 전수 조사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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